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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48~70년 22세 전태일
63~88년 25세 박래전
65~87년 22세 박종철
66~87년 21세 이한열
72~91년 19세 강경대
47~16년 69세 백남기
열사 분들의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추모합니다
이 사진은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 앞에서 경찰이 직사한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등진 후 있었던 장례 집회에서 찍혔다.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은 우상호 의원이며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배우 우현이다.
30년전_오늘
6월 민주항쟁이자 이한열 열사님 서거일입니다
어제 참 기분이 묘했다. 홍연 분명 왕의남자 연산군을 보고 쓰셨다는 노래인데 이한열 열사의 추모제에서 불리니까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어', '고운 그대 얼굴에 피를 닦아주오' 같은 가사들이 다르게 들리기
정정합니다 이한열 열사님은 7월5일에 서거하셨습니다
우상호는 이한열 열사가 산화한 광장을 무시하는 운동권 잡상인으로 변질했다. 5.18 춤판 사건도 벌인 개쓰레기..차기 총선에선 반드시 낙마시켜주마 - 한열이 부축했던 종찬아, 30년 짐 내려놓아라
25주기부터 만들어왔던 이한열 열사 추모영상. 30주기인 올해도 업데이트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전체영상 7'33" 은 이한열기념관이나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17이...1987에게
이한열 열사 30주기
이한열 열사에게 "나라가 좀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참고 견디고 힘내서 잘 살라고 했어요. 엄마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식의 이름 짊어지고 다니며 같이 살아야 세상이 잊지 않거든요.”
아들의 죽음 이후 유가족협회에서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간 이한열 열사 어머니가 세월호
87년 6월 전국적으로 100만명↑ 시위에 참가했고 이한열 열사 노제가 열렸던 서울역 광장엔 50만명이 한곳에 모여 노태우의 6·29사기를 받아냈다.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결코 수구보수의 작은 양보에 안주하지 말고 반
이보슈 기춘씨?
당신이 "심장이 언제 멎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 있다"고 하는 이날
30년전 이한열은 심장이 머졌다.
당신이
87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을때
이한열 열사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받았다.
이보슈~
아프냐?
어머니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날 이후, 아들을 대신해 '민주투사'가 됐다
인물 360˚ “네가 할 일 이 에미가 조금 하고 왔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1987년 어느날, 이한열 열사의 운구가 망월동에 묻히기 전에 금남로에 잠깐 들른다고 해서 아빠랑 손잡고 시내에 나가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중학생이었는데 5.18을 체험해서인지는 몰라도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참 정의로웠던 것 같다.
바로 이한열 열사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없고 그가 신었던 운동화 한 쪽만이 남아있습니다.
이한열 열사 사망 항의시위에서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우상호 의원 여러가지 논란거리가 많은 의원이지만 넘어가자-_- 그리고 오른쪽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우현 배우.
방송에서 이한열을 대놓고 '열사'라고 하는 것을 보니 세상이 쬐끔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미친거 아냐? 독재자를 기념하는 나라가 어딨냐? 세계적인 우사도 이런 우사가 없다. 이런일에 쓰라고 세금 내는 줄 아나? 당장 중지하고 유관순. 안중근. 김구. 이한열... 독립투사, 민주열사 많잖아!
6월 항쟁이 30년이 됐고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신지도 30년이 됐습니다. 올해도 연세대에서 기념식을 했는데요,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 짐을 벗으라고...
맨마지막 이한열 열사 호명합니다,박종철 열사도 호명하고요!가신순서 같에요!절절합니다~~
에고 이상호기자님이 제졸고를 공유해주셨네요! 6월항쟁 30년인 오늘 이한열열사님ㆍ박종철열사님ㆍ황보영국열사님ㆍ박래전열사님ㆍ강경대열사님을 목놓아불러봅니다‥다시는 이 열사님들께 부끄럼없는 민주.민생.평화의 시민공화국을 제대로 지키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백남기 농민을 돌아가시게 한 "살수차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경찰은 살수차의 이름을 '참수리 차'로 바꾸고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경찰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펌
이땅의 모든 이한열 열사분들께 머리숙여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고이 잠드세요.
오늘 저녁 서울광장에서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 문화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가봐야겠네요.
87년 6월 항쟁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 추모문화제가 진행 중인 서울광장, 어느덧 30년이 흘렀지만 독재자 전두환 살인마가 아직도 큰소리치며 멀쩡히 살아 있다는게 분노스럽습니다.
6_10항쟁_30주년
이한열_열사
오늘 저녁 7시 30분부터 이한열의 3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립니다. 꽃다지는 열사가 전사에게를 부른다고 합니다. 이 노래의 브릿지 부분 가사는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던 이종창님이 30년이 지난 오늘 이한열 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열아~ 이만큼 왔다' 라고
담담히 인터뷰하시네요.
만감이 고이고 스치겠지요.
듣는 저도 울컥이는데...
학생시절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이 아니었던 당신은 세월이 흘러 그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민주국가의 혜택은 다 누리고는 그들을 운동권빨갱이라 부르며 오늘 지금 이한열 열사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코웃음치면서 독립운동가와 같은 "열사"호칭 쓰지 말자고한다
학생시절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이 아니었던 당신은 세월이 흘러 그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민주국가의 혜택은 다 누리고는 그들을 운동권빨갱이라 부르며 오늘 지금 이한열 열사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코웃음치면서 독립운동
이사를 가면 아들이 혹여 길을 잃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이 귓가를 맴도네요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맙습니다
우리들은 잊지않습니다
6월9일 금요일 18시30분
저희 국민티비에서
이한열 열사 30주기를 기념
시민문화제를 생중계 합니다.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방송되며
정권이 바뀐해에 610민주항쟁이 30주년을...
기념식 참석한 6.10 민주항쟁 당시 외신기자 킴 뉴튼씨.
고 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집회 사진을 달님께 전달.
좌측 우상호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측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 영화배우 우현
87년 6월 항쟁 당시 외신 사진기자 Kim Newton 씨가 찍은 이한열 열사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우상호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우현 사회부장의 사진.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 국민장》
《한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 황계동산 광주 진흥고 동문!
'열'자에 선 자주인 들꽃평화!
근데 나두 참 주의 기울지 않았던게 이한열 열사가 그냥 연세대 학생으로만 알고 있었지 이쪽 분이신거 이번에 알았다 ..
그알 역시 6월 항쟁 이야기...
어제자 궁금한 이야기서 제작진이 깨지고 고장나있는 이한열열사 시계 뒤져서 같은모델이라도 찾아서 어머님께 주는 장면이 생각난다 시계 가지고 계시다고 하셨던 분 별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꼭 유가족 품에 돌려주세요
이한열 열사 끌어안으셨던 저 이종창이라는 분은 이한열 열사랑 일면식도 없는 사이었다고...
그저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셨다고...
고 이한열 열사의 누나 되시는 분이 내 동생 중학생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내 동생은 87년생이고.
역시 시민의 힘은 컸습니다.
무서운 전경들,깃발든 대학생들, 박종철 고문 사건, 이한열 열사, 최루가스 냄새...
어린 나이에 기억나는 6월달 이야기...
대학생이 되면 누구나 데모하는 줄 알았다.
1987년 6월 고맙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게 30년전 6월 9일 오늘이며
숨을 거두신 것은 그 해 7월 5일이었죠.
대강당 북문광장에는 사진과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박종철열사였는지, 이한열열사였는지, 아니면 두 분 모두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작은 추모공간을 지나치면서 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도 날이 흐리고, 비오는날에는 고문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한열 열사와 동문입니다.
다독여 주셔 고맙습니다...
6월
87년 6월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던 연세대 2학년 이한열 경찰 방패 앞에서 그의 영정을 든 우상호 총학생회장과 배우 우현 씨를 찍었던 외신기자 Kim Newton씨가 30년만에 그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6월항쟁 기간중 시청광장에서 이한열 노제를 하던날 빼고는 시청 태평로 광화문 종로가 시위대에 점령당한적 없다.산발적으로 인도에서 시위하다 쫓기는걸 되풀이했고 명동은 해방구였다.노제 당일에 백만인파가 가자청와대로 외쳤지만
6월 9일에 쓰러진 이한열이 남긴 마지막 말은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 였습니다. 87년 6월 10일, 어떤 사람들은 나오지 못한 이한열의 이름으로 거리에 섰을 것입니다.
30년전, 87년 6월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던 연세대 2학년
이한열 . 경찰 방패 앞에서 그의 영정을 들고 있던 우상호 총학생회장과 배우 우현 씨를 사진 찍었던 외신기자 Kim Newton...
6.10 항쟁, 30주년.
6월 항쟁이란
87년 6월 한 달 동안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
저항운동의 기폭제는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머리에 최류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진 1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수많은 분들이 87년 6월 엄청난 희생으로 직선제를 쟁취한... 근데, 그런데... 또 노태우를 뽑아 줬던... 좀 그렇지?..
4.16합창단 공연!, 6월9일 금 , 오후 6시30분, 이한열기념사업회, 고 이한열 추모 문화제, 서울광장
박종철
★핵심은 평화통일입니다★
자신없지요 .어렵게 보이지요 ?
박종철 .이한열이 통일의 알파고가 되어
★☆★서울 명동에 있습니다★☆★
환자복입은 김기춘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이 말년마저 그악스럽다
박종철이 고문으로
이한열이 최루탄으로 죽어간
30년전 넌 뭘했는가
박종철의 부모가 아들을
목메어 부를때
이한열의 어머니가
아들이 눈뜨길 애절히 빌때
물고문에 죽을 박종철이 아니며
최류탄에 죽을 이한열이 아닙니다 .둘은 통일의
알파고가 되어 명동에 살아 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분노했던 기억. 이한열도 그렇고. 오히려 나는 중고등학교때가 더 정의감에 불탔던 것 같다. 대학 들어가선 부모님과 친척들이 하도 걱정하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운동권 비슷무리한 써클엔 발도 안디뎠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분노했던 기억. 이한열도 그렇고. 오히려 나는 중고등학교때가 더 정의감에 불탔던 것 같다. 대학 들어가선 부모님과 친척들이 하도 걱정하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운동권 비슷무리한 써클엔 발도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박종철 이한열을 팔고
모든걸 민주항쟁이라하고, 6.10 또한
그렇고, 그렇게 30년을 울궈먹은 386
종자들, 나라에 돌던진 놈이나 그냥
뒤엉킨 년이나, 운동권임을 훈장삼아
정치꾼으로 변신, 사욕과 권력을위해
줄창 투쟁
5/18 명동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 성명서 낭독
야당 재야 시민단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결성
6/9 이한열 최루탄 피격
6/10 범국민대회
6/18 최루탄 추방대회
광주의 이한열,
부산의 박종철, 절대 잊지 않겠다.
★총리님을 뛰어 넘는 ★
박종철 .이한열의 통일의 알파고가 ?
서울 명동에 있습니다 ★☆★
얼마나 잔인하게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는지 80년 박종철, 이한열 젊은 청춘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세월호 배안에서 그꽃같은 생명들이 어떻게 됐는지...그들은 다 같은 놈들이고 하나도
그렇게 박종철 이한열 민주화 직선제 투쟁했는데....노태우 뽑은 미친궁민들 C8..죽쒀서 나줌? 케배쓰 방송본 소감
박종철. 이한열. 이태춘.
87년
1987년 7월 9일.
이한열 노제에서
베를 가르며 넋을 위로하는
춤을 추던 청년 이애주.
그리고 30년.
2017년.
그렇게 한 세대가 흘렀다.
“사회의 외곽지대, 무풍지대에서 스스로 망각한 채 살아왔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하여, 오늘은 다시 살아나는 날, 내가 우리가 되는 날이어야 한다.” 1987년 2월 이한열의 메모
자작 한시 '이한열'
87년 6ㆍ10항쟁 30주년
연세대
이한열 30주기 사진전.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맞아
최류탄에 맞아 죽었다구요 ?
이한열은 서울 명동에 살아 있습니다 .
통일의 알파고가 되었습니다★☆★
30년전
30년전 오늘 로이터 기자 찍었고,뉴욕타임즈 1면에 실렸으며,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보도사진.전두환 정권이 쏜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 학생.이 사진으로 17일간 전국에서 500만명 이상이 2145회의 시위를
항쟁
6.10민주항쟁 30년
가만히 보면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사실 역사가 더럽고 잔인한 부분이 많지 않으냐
사람이 망치고
사람이 만들고
역사가 흘러가는 것같다
아들을 잃고 투사로서 살아 온 삶에 후회가 없다
- 이한
"그대가 있었기에,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수 있었습니다"
2017년 어느 네티즌
610항쟁_이한열
살아
민주주주의를 목숨바쳐
지켜냈던 이한열열사와
그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리트윗합니다...
이한열
2017.06.09 이한열 문화제 안예은 베스트컷 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봄온과 안선생님을 알길 바라는 마음을 늘 갖고있었고 어쩌다보니 기회가 왔다 이한열장학생에 뽑혀서 이한열 추모제 기획할때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된것이다
쓰러진지 27일만에 숨을 거둔 이한열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늦게 거리에 나오게 되었지만, 혼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정사진으로 온 이한열과 함께 거리에 섰습니다.
저는 결국 MBC에 가지 못 했고 시청 근처를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신문을 읽어서 이한열님의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어렴풋이 아는 것이었고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그날의 구호는 생각납니다. 다들 한 목소리로 외치는데 두
이한열 스물둘......
오늘 그것이 알고싶다 이한열군 이야기네
궁굼한 이야기Y 이한열씨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안녕이란 오래된 동요가 나왔다 가사를 찾아봤는데 너무 좋을 것이었다....
이한열은 잊고 강민창 전두환을
따르라고 ? ★☆★
이한열님 어머니 사진보니 마음 아파 죽겠다
슬픈 한 맺힌 얼굴
'이한열'
이한열 추모 문화제 - 안예은 중간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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